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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9 vs r30
......
2302301989년 7월 25일, 벨포르 대법원은 베인브리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231231> "피고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권력을 찬탈했고, 국민을 분열시켰으며, 공포에 기반한 통치를 조장하였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과오가 아니라 국민주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국가 전복을 시도한 내란행위에 다름 아니다. 헌법은 무력에 무너지지 않는다."
232232
233{{{#!folding [ 판결문 전문 펼치기 · 접기 ]
234'''《1989년 7월 25일, 루이나 벨포르 대법원 국가형사특별합의부 판결문》'''
235피고인 리처드 앨런 베인브리지에 내란, 헌정질서 파괴, 살인 방조 및 직권남용 사건
236
237본 재판부는 오늘, 루이나 헌정에서 가장 무겁고 참담한 재판의 마지막 장을 마주하고 있다. 이 나라의 헌법은 한 세기 가까이 수많은 위기를 딛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가치를 다져 왔다. 그 기초 위에 세워진 대통령 국가의 장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동시에 절대 책임과 준법의무를 요구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 선 피고 리처드 앨런 베인브리지는, 한을 법의 이름으로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 사적 야망에 의 찬탈하였음을 스스로 입증하였다.
238
239 재판부가 무겁게 여기는 것은 피고의 이력이다. 피고는 군정에 맞서 두 차례 투옥되고 국외로 쫓겨났던 사람이며, 그 이력으로 국민의 신임을 얻어 헌정 회복의 첫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가 무너뜨린 것은 자신이 세운 것이었다. 이 사실은 정상참작의 사유가 아니라 가중의 사유다. 헌법이 어떻게 죽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그 방법을 그대로 사하였기 때문이다.
240
241피고는 헌법이 정한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에서, 제70조와 부칙 제3조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세 번째 임기를 요구하였다. 이 출마 선언은 선거 전술이 아니라 헌법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이었다. 공화국 체제를 인격으로 대표하는 자가 그 체제를 부정한 모순적 죄악이었다.
242
243나아가 피고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극우 폭력단체와 결탁하였다. 이들은 1989년 3월 28일 시민을 향해 자동화기를 난사하여 31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이튿날 의사당에 차량을 돌진시키고 무기를 들고 난입하여 25명의 죽음을 초래하였다.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다수의 증거와 진술은, 피고가 이 사태의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였음을 명확히 입증하였다.
244244
245245무엇보다 피고의 언어는 총보다 위험한 무기였다. 그는 자신을 위해 쇠파이프를 든 자들을 "고귀하다"고 불렀고, 헌법을 지키자는 국민 다수의 목소리를 선동으로 매도하였다. 그 말 한마디가 수십 명의 극단주의자에게 폭력을 정당화시켰고, 야당 의원의 차량을 쇠파이프로 내리치는 행동을 정치의 일부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246246
247247그러나 이 재판부가 피고의 죄를 방조에 그치지 않고 내란의 수괴로 판단하는 근거는 따로 있다. 1989년 3월 29일 12시 20분, 의사당이 이미 완전히 제압된 뒤, 피고는 국무회의의 심의도 의회에 대한 통고도 없이 계엄을 선포하고 수도방위사령부에 병력 전개를 지시하였다. 이 명령은 사태의 수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종료된 사태를 명분 삼아 군을 동원해 의회를 봉쇄하고 파면을 저지하려 한 것이었다. 국방참모총장과 수도방위사령관이 이 명령을 거부함으로써 실행이 저지되었을 뿐, 피고의 행위는 헌법기관을 군사력으로 무력화하려 한 내란의 실행행위 그 자체다. 그것이 실패한 것은 피고의 자제 때문이 아니라, 명령을 받은 자들이 헌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248248
249249본 재판부는 피고에게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였고 국선 변호인단도 선임되었으나, 피고는 "나는 조국을 지켰을 뿐"이라며 사실관계를 시인하고도 반성하지 않았으며, 공화국에 대한 모독적 발언을 지속하였다.
250250
251251이 재판은 한 개인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폭력과 권력 찬탈에 대한 국민의 의지를 대변하는 역사적 판단이다. 공화국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공화국을 죽이려 한 자를 용서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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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253이에 본 재판부는 피고 리처드 앨런 베인브리지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루이나 공화국은 어떤 권력도 헌법 위에 설 수 없음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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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2551989년 7월 25일
256256루이나 공화국 벨포르 대법원 국가형사특별합의부
257257주심판사 허버트 프레슬러
258258}}}
259259
260260베인브리지는 최종 진술에서 "역사는 나를 오해했다. 나는 국민의 뜻을 따랐을 뿐이다"라고 주장했으며, 항소하지 않았다. 그는 벨포르 고도보안교도소 7호동에 수감된 채 외부 접견을 대부분 거부했고, 1989년 12월 12일 형이 집행되었다. 유언은 "내 조국은 무릎 꿇지 않았다"였다.
261261
262262정부는 시신을 국가보안상의 이유로 비공개 장소에 매장했고 장례나 추모 행사를 허가하지 않았다. 일부 극우 잔존세력이 그를 "헌법을 거부한 진실의 순교자"로 추앙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여론 대다수는 그의 죽음을 "민주주의를 배신한 자의 최후"로 평가했다.
263263
264264=== 극단주의 단체 ===
265265광역수사국은 조국의 방패를 포함해 루이나 민병대 연합, 공화국 수호 시민회 등 총 12개 극우 무장단체의 핵심 인물에 대한 전면적인 검거 작전을 전개했다. 이들은 헌법기관에 대한 폭력적 전복을 시도한 내란음모의 주범으로 기소되었다.
266266
267267||<tablealign=center><tablewidth=560><tablebordercolor=#4a0000><rowbgcolor=#4a0000><rowcolor=#ffffff> 피고인 || 소속 || 혐의 || 선고 ||
268268|| 마커스 엘트리치 || 조국의 방패 총사령관 || 내란수괴, 살인교사 || 종신형 ||
269269|| 레이첼 바스킨 || 조국의 방패 || 무기 조달, 반란 계획 수립 || 종신형 ||
270270|| 빈센트 로메로 || 조국의 방패 || 차량테러 현장 지휘 || 징역 45년 ||
271271|| 조너선 크릴 || 루이나 민병대 연합 설립자 || 무장조직 구성, 납치 기도 || 징역 42년 ||
272272|| 하비어 르망 || 공화국 수호 시민회 대표 || 폭력 선동, 언론인 협박 || 징역 30년 ||
273273
274274재판부는 이들이 조직한 집단을 정치적 표현의 일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실질적으로 군사적 지휘 체계를 갖춘 사설 무장조직이었으며, 그 목적이 헌법기관의 물리적 무력화였다는 점에서 내란을 기도한 반헌정 범죄집단이라는 것이다. 일반 조직원 다수는 집행유예 없이 5~20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공공건조물 파괴·무기 소지·방화·경찰관 폭행 등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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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276{{{#!folding [ 마커스 엘트리치 판결문 펼치기 · 접기 ]
277277루이나 공화국 특별재판부는 피고 마커스 엘트리치에 대해 단호히 판결한다. 피고는 1989년 3월 29일 루이나 헌정질서를 유린한 무장 반란의 실행 수괴이며, 국민의 생명과 민주주의 자체를 겨냥한 살상 명령의 발신자였다.
278278
279279피고는 조국의 방패의 총사령관으로서 수개월에 걸쳐 민간인을 무장시키고, 의회를 공격 대상으로 지목하며, 헌법기관에 대한 공격을 공공연히 선동하고 명령하였다. 1989년 3월 29일 의회의사당 북문에 대한 차량 돌진과 뒤이은 무장 난입으로 25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부상한 사건은 피고의 직접적 지휘에 따른 것임이 명백히 입증되었다.
280280
281281그는 법정에서조차 반성하기는커녕 "의회는 배신자들의 둥지이며, 진정한 공화국은 총구에서 시작된다"고 진술하였다. 이로써 피고는 어떠한 민주주의적 가치도 공유하지 않으며,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으려 한 자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피고의 사상은 자유가 아니라 파괴의 교리였으며, 그의 조직은 운동이 아니라 무장 반란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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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283이 법정은 다음의 이유로 피고에게 관용을 허락하지 않는다.
284284
285285첫째, 피고는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의 생명과 권위를 직접 침해하였고, 입법 기능을 물리적으로 무력화함으로써 국가 기능 전체를 붕괴 직전까지 몰아갔다.
286286
287287둘째, 피고는 다당제와 언론 자유를 체계적으로 공격하고, 언론인을 위해 대상으로 지목하였으며, 사실에 기반한 보도를 반역행위로 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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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289셋째, 피고는 수사와 재판 전 과정에서 어떠한 반성도 표하지 않았으며, 재판정을 선전장으로 삼았다. 이는 법의 권위에 대한 조롱이자 공화국의 정당한 사법절차에 대한 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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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291이에 이 법정은 피고 마커스 엘트리치에게 '''종신형'''을 선고한다. 이 선고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루이나 공화국이 선언하는 헌법적 징벌이다. 공화국은 피를 흘렸으나 무너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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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293
294294== 영향 ==
2952953.29 헌정위기는 루이나 현대사에서 가장 중대한 헌정 붕괴 사태였으며, 그 여파는 정치·사회 전반과 국제사회에 걸쳐 나타났다.
296296
297297국내적으로는 헌정 체제의 근본적 재설계가 단행되었다. 1989년 여름부터 진행된 개헌 논의는 그해 가을 국민투표를 거쳐 '''[[제6공화국(루이나)|제6공화국]]''' 헌법으로 결실을 맺었다. 개정 헌법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298298
299299 * 대통령 직선제 도입 및 임기 4년, 1회에 한한 연임 허용
300300 * 연임 제한 조항을 개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영구조항화
301301 * 내란 및 반헌법 행위자는 사면 여부와 관계없이 피선거권을 영구 상실
302302 * 국가원수가 내란에 가담하거나 지시한 경우 자동 탄핵 및 형사처벌 대상임을 명문화
303303 * 계엄 선포 요건 강화 — 국무회의 심의와 의회 즉시 통고를 효력 발생 요건으로 규정
304304
305305사회 전반에는 반극단주의 흐름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의회는 「정치폭력방지법」, 「무장극단조직 해산법」, 「내란음모 및 폭동가담자의 공직 제한법」을 신속히 통과시켰고, 조국의 방패와 연계된 38개 단체가 일괄 해산되었으며 그중 9개 조직이 테러단체로 공식 지정되었다.
306306
307307교육과 기록의 영역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고등학교 사회 교과에 헌정 수호와 시민의 역할을 다루는 단원이 신설되어 전국 의무 수업으로 지정되었고, 루이나 국립기록원은 '3.29 특별기록관'을 개관했다. 매년 3월 29일은 '''헌법수호의 날'''로 지정되어 국가기념일로 정착했다.
308308
309309의회 경비 체계도 전면 개편되었다. 의사당 경비는 기존 경찰 소관에서 의회 직속 '''의회안전대(CPS)'''로 이관되었고, 외곽 순찰에 드론과 열감지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310310
311311같은 해 실시된 조기 대선에서는 [[토머스 J. 윈필드]]가 당선되어 제27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10 선언의 당사자였으나 개헌을 완수하지 못했던 그가 내란 이후의 재건을 맡게 된 것은, 루이나 정치사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 중 하나로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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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313국제적으로도 파장이 컸다. 랜드해협 안보질서의 중추국가에서 벌어진 사태였기에 동맹국들의 충격이 컸고, 동시에 권위주의 진영은 이를 "서방식 민주주의의 파산"으로 규정해 선전에 활용했다. 루이나 외교부는 위기 이후 민주주의 정상화 조치와 헌법 개혁 경과를 국제사회에 설명하는 이른바 '헌정회복 외교'를 개시했다.
314314
315315결과적으로 3.29 헌정위기는 루이나 정치체제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나, 동시에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고 민주주의적 복원력을 입증한 사건으로 남았다.
316316
317317== 각국 반응 ==
318318=== 미합중제국 ===
319319국무부는 3월 30일 긴급 성명을 통해 "루이나에서 발생한 의회 폭력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민주적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어떤 시도에도 명백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루이나 주재 대사관은 탄핵 직후 국기를 조기로 내렸으며, 이후 헌정회복 이후의 재건 지원 프로그램을 공식 제안했다.
320320
321321=== 플로렌시아 공화국 ===
322322외교부는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오늘, 우리는 충격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플로렌시아 언론은 베인브리지를 "민주화 운동이 낳은 가장 잔혹한 배신자"라고 비난했고, 정부는 루이나와의 고위 외교 접촉을 한 달간 잠정 중단했다.
323323
324324=== 빌베른 왕국 ===
325325"헌정파괴 시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즉각적인 탄핵을 환영했다. 빌베른 하원의장은 루이나 의회의 탄핵 소추를 "역사적 책임의 실현"이라고 평가하며 인권 감시단 파견을 제안했다.
326326
327327=== 사비에트 연방 ===
328328공식적으로는 침묵을 유지했으나, 국영 언론 《노보이스티》는 "루이나식 의회민주주의의 파산"이라며 체제 선전에 활용했다. 외무성 고위 관계자는 비공식 인터뷰에서 "루이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부 붕괴의 길을 걷고 있었다"고 조롱했다.
329329
330330=== 청평대제국 ===
331331국가방송을 통해 "루이나의 위선적 자유민주주의는 결국 폭력으로 귀결되었다"고 선전했다. 일부 고위 관료는 "서방의 이중적 가치가 루이나를 파괴했다"고 비난했으며, 외교적 비난 성명을 UN 대사 경로로 우회 전달했다.
332332
333333=== 마베라 연방 ===
334334중립적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헌법에 반한 권력은 반드시 심판받아야 한다"고 언급하며 루이나 시민들의 결단을 조심스럽게 지지했다. 마베라 내 종교단체들은 희생자를 위한 대규모 추도예배를 진행했다.
335335
336336=== 유고랜드 공화국 ===
337337"시민에 대한 총기 난사는 인류의 공적(公敵)"이라며 조국의 방패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자국 내 극우단체에 대한 대대적 수사를 개시하며 "우리 안의 3.29를 경계하라"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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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339=== 대한민국 ===
340340외교부는 "루이나의 헌법 질서가 위협받은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의회가 이를 민주적 절차로 수습한 것에 경의를 표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루이나 민주주의 수호 결의안'을 채택했고, 일부 의원은 의회를 향한 차량 돌진 테러에 대해 "우리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언론과 시민사회에서는 방탄복을 입고 의사당에 출석한 사회민주당 의원들에 대해 "진정한 헌법 수호자"라는 평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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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34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343343외무성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서방 제국주의 민주주의의 붕괴는 예정된 수순"이라며 "루이나 지배계급 내 모순이 폭발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성명은 베인브리지와 그 지지자들을 "파쑈 반동분자"로 규정하는 한편, 루이나 경찰과 군의 대응을 두고는 "짜고 친 연극"이라 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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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345=== 일본 ===
346346외무성은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협"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총리는 성명을 통해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루이나 의회의 책임 있는 대응을 환영하며, 일본은 민주주의의 동반자로서 루이나 국민과 함께한다"고 밝혔다. 일부 보수 언론은 베인브리지의 3선 시도를 "전형적인 권력 연장의 야욕"으로 규정했다.
347347
348348== 대중매체에서 ==
349349=== 영화 ===
350350'''《헌정의 날》(1995)'''
351351 : 벤자민 페르드 감독의 정치 스릴러. 사건 당일을 생존자 시점에서 재구성했으며, 폭도들의 난입 속에서 탈출하는 가상의 사회민주당 의원을 통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352352
233==== 판결문 ====
234{{{#!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6px"
235'''루이나 벨포르 법원 판결'''
236
237'''건''' 1989년 형특합 1호 내란괴, 내란목방조, 남용, 공무집행방
238{{{#!wiki style="padding-left: 3.2em"
239(병합) 1989년 제3호 직권남
240(병합) 1989년 형특합 제5호 공무상비밀누설
241}}}
242'''사건명''' 세칭 「3.29 사건」
243
254353
2553541989년 7월 25일
355
356{{{#!wiki style="text-align: right"
256357루이나 공화국 벨포르 대법원 국가형사특별합의부
257주심허버트 프레슬러
358장 판'''허버트 프레슬러'''
359판사 '''이디스 M. 콜브룩'''
360판사 '''앰브로즈 W. 킬리언'''
361}}}
258362}}}
259363
260364베인브리지는 최종 진술에서 "역사는 나를 오해했다. 나는 국민의 뜻을 따랐을 뿐이다"라고 주장했으며, 항소하지 않았다. 그는 벨포르 고도보안교도소 7호동에 수감된 채 외부 접견을 대부분 거부했고, 1989년 12월 12일 형이 집행되었다. 유언은 "내 조국은 무릎 꿇지 않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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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378재판부는 이들이 조직한 집단을 정치적 표현의 일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실질적으로 군사적 지휘 체계를 갖춘 사설 무장조직이었으며, 그 목적이 헌법기관의 물리적 무력화였다는 점에서 내란을 기도한 반헌정 범죄집단이라는 것이다. 일반 조직원 다수는 집행유예 없이 5~20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공공건조물 파괴·무기 소지·방화·경찰관 폭행 등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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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folding [ 마커스 엘트리치 판결문 펼치기 · 접기 ]
277루이나 공화국 특별재판부는 피고 마커스 엘트리치에 대해 단호히 판결한다. 피고는 1989년 3월 29일 루이나 헌정질서를 유린한 무장 반란의 실행 수괴이며, 국민의 생명과 민주주의 자체를 겨냥한 살상 명령의 발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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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495 * 본회의장에 입장한 사회민주당 의원들은 정장을 벗고 방탄복 위에 당 패용만 착용한 채 등장했다. 이 장면은 "민주주의는 말보다 먼저 생존해야 한다"는 문장과 함께 루이나 정치의 상징 중 하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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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 판결문 ====
381{{{#!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6px"
292497}}}
293498
294499== 영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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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599
395600 * 사건 당시 본회의장에 있던 속기사는 상황을 끝까지 기록했다. 해당 속기록은 국립기록원에 보존되어 일부가 공개되었으며, "의장이 방탄복을 입은 채 의사봉을 두드리며 의결을 강행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어 뒷날 영화화되기도 했다.
396601
397 * 재판부가 선고 당시 남긴 "대통령 위에 군림하순간, 공화국은 무너진다"는 구절은 현재 루이나 사법연수원 대강당 벽면에 새겨져 있다.
602 * 재판부가 판결문 제6항에서 남긴 "헌법어떻게 죽는지를 가장 잘 아사람이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였다"는 구절은 현재 루이나 사법연수원 대강당 벽면에 새겨져 있다.
398603
399604 * 마커스 엘트리치와 함께 검거된 극우 인사 중 일부는 자살, 망명, 신원 은폐를 시도했으나 광역수사국의 광역 수사와 국제 공조로 대부분 체포되었으며, 최종적으로 '''238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중 내란죄와 살인죄로 기소된 17명은 무기징역 이상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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